2026년 10월 29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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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여러 번 대신, 길게 딱 한 번을 택하는 사람들

며칠씩 도시를 옮겨 다니던 여행 대신, 한곳에 한 달 이상 머무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숫자와 제도가 함께 보여 주는 변화

짧게 여러 번 대신, 길게 딱 한 번을 택하는 사람들

며칠 만에 여러 도시를 훑고 다음 목적지로 떠나던 여행이 조금씩 저물고 있습니다.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한 도시, 한 지역에 한 달 이상 머물며 그곳의 일상을 그대로 살아 보는 여행입니다. 짧게 여러 번보다 길게 한 번을 고르는 사람들, 그 변화를 숫자와 제도로 따라가 봤습니다.

짧게 여러 번보다 길게 한 번

벨기에에 본부를 둔 유럽여행위원회(ETC)의 장거리 여행 조사에 따르면, 장거리 여행자 가운데 슬로우 트래블을 고르겠다는 비중이 2025년 22%에서 2026년 26%로 늘었습니다. 같은 조사에서 장거리 여행 자체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조금 줄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눈에 띄는 변화입니다.

독일 여행 그룹 데어투어의 유럽 여행 트렌드 조사도 같은 방향을 가리켰습니다. 영국 매체 브레이킹 트래블 뉴스에 따르면 13개 나라 8,000명에게 물은 이 조사에서 53.2%가 천천히 머무는 여행에 관심이 있다고 답했고, 그중 58.5%는 서두르지 않고 그 장소를 온전히 겪고 싶어서라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52%는 이런 여행이 마음의 안정과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습니다. 혼자 떠난 여행자의 평균 체류일은 10.4일로, 전체 평균 8.9일보다 길었습니다.

미국 여행 플랫폼 익스피디아의 연례 트렌드 보고서도 비슷한 신호를 읽었습니다. 여행 후기에 농장, 정원 가꾸기, 책 읽기처럼 느리게 머무는 여행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 등장하는 빈도가 1년 새 300% 가까이 늘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곳을 봤는가보다 그곳을 얼마나 제대로 느꼈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다고 저희는 봅니다.

도시를 옮기지 않기로 한 원격 근무자들

원격으로 일하며 여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변화가 더 뚜렷합니다. 태국 일간지 네이션 타일랜드는 2026년 디지털 노마드들이 더 길고 안정적인 체류를 찾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매달 새 도시로 옮기던 방식 대신 한 도시에 오래 머물며 지역 공동체에 스며드는 방식으로, 업계에서는 이를 슬로우매딩이라고 부릅니다.

그 배경에는 번아웃, 곧 지칠 대로 지친 마음이 있습니다. 끊임없이 새 도시에 적응하고, 새 숙소를 구하고, 새로 사람을 사귀어야 하는 생활이 오히려 피로를 키운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은 것입니다. 도시를 고르는 기준도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관광 매력과 물가가 먼저였다면, 이제는 안정적인 공동체와 일하기 좋은 환경, 꾸준히 이어 갈 수 있는 일상이 더 중요해졌다고 이 매체는 분석했습니다.

일을 잠시 멈추는 미니 은퇴

이 흐름은 원격 근무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랍에미리트 일간지 걸프뉴스는 금융회사 HSBC의 설문을 인용해, 몇 달에서 1년 정도 일을 완전히 멈추는 미니 은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응답자들은 그 시기를 위한 돈으로 저축(40%), 투자 수익(39%), 임대 소득(37%)을 꼽았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긴 휴식을 가장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쪽이 은퇴를 앞둔 사람이 아니라 젊은 세대라는 점입니다. 같은 설문에서 다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34%), 가족 문제(33%), 건강보험 공백(33%) 같은 현실적인 걱정도 함께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지금의 시간을 누리려는 태도가 이런 선택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도도 따라 움직인다

여행자의 선택이 바뀌자 제도도 움직였습니다. 팬데믹 시기 임시로 생겼던 원격 근무자용 장기 체류 비자는 이제 여러 나라에서 정식 제도가 됐습니다. 이민·비자 리서치 기관 이미그런트 인베스트의 2026 디지털 노마드 비자 지수에 따르면, 2025년 기준 50개가 넘는 나라가 원격 근무자 전용 거주 비자를 운영하고 있고, 유럽과 아메리카,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까지 대륙을 가리지 않습니다.

여행과 거주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는 신호로 저희는 읽습니다. 한 달 이상 머무는 방문객은 숙소 한 곳에 그치지 않고 동네 시장과 식당, 세탁소처럼 지역 곳곳에서 돈을 쓰기 때문에, 나라들도 이들을 반기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 달을 머물기 전에

오래 머무는 여행은 준비할 것이 다릅니다. 숙소는 월 단위 계약을 먼저 알아보세요. 하룻밤 단위 숙박 플랫폼보다 월세 개념의 장기 임대가 비용 면에서 유리한 경우가 많고, 잦은 이동에 드는 항공료와 교통비도 줄어듭니다. 관광지 한복판보다 장을 보고 빨래를 할 수 있는 생활 동네인지가 한 달의 편안함을 좌우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체류 규정입니다. 무비자로 머물 수 있는 기간은 나라마다 달라서 30일이 안 되는 곳도, 90일 이상인 곳도 있습니다. 한 달 넘게 머문다면 관광 목적의 체류만으로 충분한지, 원격 근무자 비자를 따로 신청해야 하는지 출발 전에 해당 정부의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하세요. 오래 머물면 세금 거주자로 판정될 수 있는 기준도 나라마다 다릅니다.

보험도 다시 봐야 합니다. 짧은 여행용 여행자보험은 긴 체류를 보장하지 않거나 특약이 따로 필요한 경우가 많으니, 머무는 기간에 맞는 보험인지 약관을 확인하세요. 현지 유심이나 결제 수단은 도착하기 전에 준비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도착 첫 주에 동네 공동체나 공유 작업 공간을 찾아 두면 낯선 도시가 훨씬 빨리 내 동네가 됩니다.

다음 여행에서는 며칠 치 일정표 대신 한 달이라는 여백을 한 번 그려 보세요. 짧게 스쳐 가는 여행이 놓치던 것들을 그 여백이 채워 줄지도 모릅니다.

※ 비자와 체류 규정, 세금 기준은 나라마다 다르고 자주 바뀝니다. 출발 전 해당 국가 정부의 최신 공식 안내를 확인해 주세요.

참고 출처

  1. European Travel Commission — "Long-haul travellers grow more cautious in 2026, while safety and flexibility shape demand for Europe" (벨기에, 국제 관광 기구)
  2. Breaking Travel News — "DERTOUR Group European Travel Trend Part III: How slow and solo travel are redefining holidays" (영국 매체, 독일 데어투어 그룹 조사 인용)
  3. Expedia Newsroom — "Unpack '26: Expedia, Hotels.com, and Vrbo Reveal How Travelers Will Explore The World in 2026" (미국, 글로벌 여행 플랫폼)
  4. Nation Thailand — "Digital nomads seek cities for longer, steadier stays in 2026" (태국, 매체)
  5. Gulf News — "'Mini-retirement' breaks are trending in UAE, says HSBC — here's why" (아랍에미리트, 매체)
  6. Immigrant Invest — "The 2026 Digital Nomad Visa Index" (국제 이민·비자 리서치 기관)

※ 썸네일 사진: Engin Akyurt / Pixabay